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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여행/경상도 여행

달성 하빈면 묘골마을 이야기 / 육신사

by 황금성 (Gold Castle) 2023. 6. 20.

도곡재(陶谷齋) 후문
도곡재 주변을 둘러싼 능소화
560여년전, 단종 복위에 실패하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간 사육신의 넋을 위로하는 듯 능소화가 붉은 빛을 토해낸다

 

사육신 박팽년의 후손들이 정착한 묘골마을

2023. 6. 18 (일) // 폭염이 작열하는 주말 오후, 능소화가 붉게피는 달성군 묘골마을을 찾아보았다

오늘까지 4번째 찾아가는 묘골마을은 사육신에 얽힌 사연들과 박팽년의 후손들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육신사(六臣祠)가 있는 묘골마을에 얽힌 "박비(朴婢)" 내력을 살펴보자

※ 1456년 6월 사육신을 포함한 충신들이 피바람 속에 숨져간지 몇 달이 흐른뒤인

그해 늦가을, 경북 달성군 하빈면 묘리의 교동현감 댁에서는 두아이가 태어났다.

한 아이는 박팽년 대감의 손자였고 또 한아이는 그 댁 노비의 딸이었다.

 

핏덩이를 안은 박팽년 대감의 둘째 며느리 성주 이씨는 만감이 교차했다

시할아버지 박중림과 시아버지 박팽년의 5형제, 남편 박순을 포함한 3형제까지

집안의 남자 9명은 모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집안의 여자들은 관노비가 되어

전국으로 뿔뿔이 흩어졌는데 아버지인 교동현감 이철근의 친정댁으로

관노비로 갈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큰 행운 이었다.

 

“아이가 사내면 죽이고 계집아이면 관노비로 보내라” 는 나라의 서슬퍼런

엄명이 떨어져 걱정이 태산 같은데 마침 친정댁의 한 노비가 비슷한 시기에 딸을 낳았다.

며느리는 무릎을 치며 서로 아이를 바꾸면 이 아이는 죽음을 면하리라...박팽년 대감의 손자는

이렇게 현감댁 노비의 아들 “박비” 라는 이름으로 그 질긴 목숨을 잇게 되었고

성종대에 사면을 받은후 560년이 지난 지금까지 박팽년 대감의 후손을

20대나 이어올 수 있는 단초가 되었다고 한다

 

외할아버지에 의하여 박비(朴婢)라는 이름으로 비밀리에 키워진 이 아이가

17세 되었을때 그의 이모부 이극균이 경상도 관찰사로 부임하여 처가에 들렀다가

성장한 그를 보고 자수를 권하였고, 서울로 올라간 박비는 성종대왕으로부터

사면을 받게 되었다. 박비(朴婢)로 불렸던 박팽년의 손자는 성종으로부터

박일산(朴一珊)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고 후손이 없는 외가의 재산을 

물려받아 묘골에 종택을 지으면서 후손들이 정착하였다고 한다

달성 하빈면 묘골마을 입구에 도착
주차장 옆에 설치된 사육신 기념관 / 오늘까지 4번째 탐방인데 처음으로 문이 열려있어서 들어가 본다
온 가문이 멸문지화를 당하면서도 절의를 굽히지 않았던 사육신 박팽년의 초상화
강직한 모습의 박팽년 / 충정공 취금헌 박팽년 선생상 ...이라 표시
기념관 내부를 둘러보며
이곳 묘골 마을은 사육신 박팽년의 손자 박일산이 17년간 노비로 신분을 감추며 지내다가 사면을 받은후 세운 마을이다
묘골마을 입구에 자리한 충효당 / 박팽년의 7대손 숭고가 세운 별당으로 문중의 교육장소로 사용하던 곳이다
좌측으로는 사랑채, 안쪽으로는 충효당이 보이네요
충효당 / 기품 넘치는 모습이 주변을 압도
오랜 세월의 풍상을 겪었으나 단아한 모습이고
옆 공터에 묘운(竗雲)이라는 카페가 생기면서 충효당도 2시간 단위로 예약해서 이용할 수 있다
입구 사랑채벽에 묘운(竗雲)이란 글씨가 시선을 끈다 / 구름속의 고요란 말이 이마을에 숨겨진 사연들을 대변하는 듯
그리고 옛 교육장으로 쓰던 부지에 차려진 한옥 카페
카페 이름도 이곳 마을이름을 따서 ... 묘운(妙雲)
카페 묘운 ... 입구에 들어서며
넓직한 카페 내부를 둘러본다
박팽년의 후손들이 모여사는 순천 박씨 집성촌, 구한말까지는 300여 호의 집이 있었으나 지금은 30여 호만 마을을 지키고 ...
집안이 보이지 않는 높은 담장에 올려진 능소화
높은담과 대문, 좁은 뜰안에 소나무와 능소화가 크게 자리잡은 독특한 집이네요
소화낭자의 한이 담긴 능소화가 붉은 빛을 발산하고 ...
육신사로 올라가는 마을의 중심 골목길
맞은편 골목안 꽃길따라 들어가보니 ...
예전에 들렸던 기억이 있는 만권당(萬券堂)이다
주인의 허락을 받고 만권당 안으로 들어서며
아마 문중의 서고(書庫)인듯 하다
만권당을 돌아나오며 ... 큼직한 대문채를 담아본다
만권당 앞 골목길로 돌아나오며
이번에는 만권당 건너편쪽으로 올라가며 담아본 한옥과 능소화
골목 양쪽에 늘어선 담장위에도 소화낭자의 한을 담은 듯 능소화가 붉은 빛 가득이다
하트 모양의 능소화 / 도곡재 바로 옆집
어느 소담한 안채를 돌아보고 / 만권당 뒷집
집 주인들의 성품을 나타내는듯, 기품 넘치는 한옥들로 채워진 묘골마을
만권당 뒷집 대문앞에서 좁은 골목길로 능소화를 따라가보니
능소화 고운 작은 문 안쪽에 ... 도곡재로 연결이 된다
방금 들어온 도곡재 후문
도곡재(陶谷齋) / 1778년 대사성 박문현이 지은 재실로 묘골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한옥이라 한다
도곡재 후문 주변
접시꽃 고운 환영을 받으며.
안뜰 담장따라 심겨진 백합꽃들을 만나보고
도곡재 안뜰에서 대문쪽으로 바라본 전경
나리꽃 고운 자태, 서양에서는 릴리(Lily), 한문으로는 백합(百合)
아름다운 계절꽃들이 꽃대궐을 이룬다
담장위에 걸쳐진 능소화를 돌아보며
도곡재 후문으로 들어왔다가 보이는 대문으로 나간다 ^^
도곡재 대문앞 표지판, 대구시 유형문화재 제 32호로 등록된 도곡재
도곡재를 나서니 ...여기서도 능소화가 활짝이다
마을 안쪽 깊숙한 곳에 자리한 육신사 외삼문(外三門)
단종 복위사건으로 멸문지화를 당한 사육신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박팽년의 후손들이 후손이 없는 나머지분들 까지 제사를 지내는 곳
외삼문을 들어가서 올라가면 육신사 사당과 사적비, 왼쪽 높은 건물이 위패를 안치한 성인문이고
사적비 옆으로 박정희 대통령, 최규하 대통령, 박준규 국회의장의 휘호가 있다
보물 554호로 지정된 태고정 / 박팽년의 유복손자 박일산이 종택을 세울때 그에 딸린 정자로 지었다는 건물
육신사에서 내려본 묘리 마을 전경 (사진 자료)
다시 마을을 내려오며 왼편 담장너머로 살구나무가 보이네요
담장 너머로 황금색 가득 머금은 살구
양반가의 멋을 더해주는 황금색 살구, 줌으로 당겨 눈으로 담아보고
치렁치렁 드리워진 능소화 고운 모습까지 집주인의 기품을 엿본다
묘골마을을 떠나기전,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 회장의 부인 박두을 여사의 생가를 찾아보고
예전에는 빈집이었는데, 요즘은 관리인이 거주하며 집을 돌보는 듯 하네요
한 시대를 풍미하였던 재계 안 주인의 생가 주변에는 망초꽃이 하얗게 덮혀 길 떠난 주인을 추모하는 듯 하고 ...
박두을 여사 생가 앞 표지판
박팽년의 후손들이 정착한 낙동강변 묘골마을과 후손들이 세운 낙빈서원, 삼가헌등도 주변에서 볼 수 있다

이 마을을 세운 박팽년 대감의 유복손 박일산이 외가집에서 태어나 노비의 신분으로 살아남은 것인데

그때 태어난 곳이 바로 이곳 묘리마을이다. 17년후 성종으로 부터 사면을 받고 후손이 없는 외가집의 재산까지

물려받아 지금의 묘리마을을 이루었으며 그 후손들이 단종복위사건으로 죽음을 당한 6분의 위패까지

모시고 제사를 지낸다는 육신사(六臣祠) ... 능소화 붉게핀 마을을 돌아보며 시간여행을 마친다

 

※ 박팽년 대감, 세종때 급제하여 성삼문과 함께 세종의 총애를 받았는데

세조가 즉위하자 단종복위사건을 도모하다 처형을 당하게 되었다

박팽년 대감과 삼형제 3명, 부친과 삼촌들 5명, 할아버지까지

가문의 남자 9명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며 죽음을

불사한 대감의 정신과 가치관은 무엇일까

... 긴 화두를 던져보며 ... 

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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