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왜 걸을까? 걷는 행위는 무얼 의미할까? 국내외 걷기나 등산으로 유명한 10인에게 물어봤다. 답은 제각각이었다.
하지만 분명한 하나의 사실은 있다. 걷기를 통해서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프랑스의 세계적인 도보여행가 베르나르 올리비에, 일본의 철학적 도보여행가 후지와라 신야, 어릴 때부터 산을 좋아한 양승태 대법원장, 한비야, 서명숙 등 국내외 유명인사 10인들은 뭐라고 했을까? 그들을 한 명씩 인터뷰해서, 의미를 담은 책 <내가 걷는 이유>(북뱅)이 나왔다. 먼저 그들의 구체적인 멘트를 한 번 살펴보자.
프랑스의 세계적인 도보여행가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현재 걷기가 억압당한 상태다. 하루 종일 앉아서 일을 보고, 앉아서 밥을 먹고, 앉아서 출근하는, 다리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생활에 익숙해져 있다. 걷기를 통해 자신을 되찾는 재충전이 필요하고, 인간에 맞는 속도를 다시 찾아야 한다. 걷기는 지극히 인간적인 행위이고, 에너지 충전의 시간이다. (중략) 나를 기다리는 고독, 나는 과연 그 심연과 맞서 싸워 달콤함을 음미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그것이 지닌 모든 이점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을까? 고독이 도피가 아니라 내가 자유롭게 선택한 것이기에 더욱 절실한 질문이다. 고독이 칠판이라면 난 그 위에다 계속 써나가야 한다. 그리고 다리가 움직이는 한 계속 걸을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걷는 기쁨, 혼자 걷는 즐거움을 꼭 전하고 싶다.”
<인도방랑> <네팔방랑> 등으로 유명한 일본의 도보여행가 후지와라 신야는 여행할 때 “버려라. 계획 없이 떠나라”고 한다.
“지금은 지식과 정보의 시대다. 지식과 정보를 통해서만 자연을 보려고 한다. 눈과 감각이 퇴화했고, 보고 판단하는 기능을 잃었다. 지금 이 기능을 살려야 한다. 지식으로 보는 것과 감각으로 보는 것은 깊이가 다르다. 지식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받아들이는 데 한계가 있다. 지식은 소중하지만 편향적이다. 사물을 깊이 이해할 때는 감각이 훨씬 우수하다. 눈과 감각으로 세상을 보고 판단하는 시대를 되살려야 한다. 그러면 지식과 감각의 균형이 살아나고 잃어버린 인간성도 회복할 수 있다. 정보를 갖고 가는 여행은 자기방어적이다. 머리로만 신경 써서 이것저것 생각하고 목 밑으로는 팽겨쳐 둔 것 같다. 다른 기관도 머리 못지않게 소중하게 여기고 활동해야 한다.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좋은 사회적 현상이다.”
지도 밖으로 걷고 지금은 구호 전문가로 활동하는 한비야는 도전을 권한다.
“사람이 걷는다는 행위는 그냥 단순히 걷는 동작이 아니다. 머리를 움직이는 순간 몸은 가만히 있는 반면, 몸을 움직이면 머리를 가만히 있게 된다. 몸과 머리의 상호작용, 즉 인간이 의식하지 못하는 잠재의식 속에서는 끊임없이 뇌를 작동시키며 몸에 맞는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제주올레의 서명숙 이사장도 길을 내면서부터 걷기 전문가로 변신했다.
“걷기는 명상이자 치유행위나 다름 없습니다. 평소에는 잘 떠오르지 않던 아이디어나 잘 풀리지 않던 고민도 걷다보면 스스로 해답이 나오거나 저절로 풀리는 경우를 종종 경험합니다. 자연에서의 걷기, 즉 길은 제게 인생의 학교이자 병원이자 명상의 쉼터라고 말합니다.”
세계 최고의 프로 바둑기사 조훈현 9단도 누구 못지않게 등산을 즐긴다.
“신체와 머리의 균형이 중요하다. 바둑은 머리만 쓴다. 걷기와 등산을 통해 균형을 잡아야 했다. 바둑을 둘 때 상대방을 흔들지만 사실을 균형을 잡기 위한 작업의 일환이다. 발 빠른 포석으로 여기저기 상대방을 흔든다. 흐트러진 혼란은 균형을 잡는 과정을 필요로 한다. 이 때 그는 평소에 다진 등산으로 바둑의 균형감각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누구나 알아주는 등산매니아다.
“사람은 여러 번 죽는다. 이 때 죽는 것은 사람의 숨이 끊어진다는 의미와 차원이 다르다. 내가 등산과 야영을 하지 않거나 못하면 나 그 부분에서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남녀관계를 가지지 못하면 그것도 그 부분에서 죽은 것이다. 내가 등산과 야영을 즐기는 이유는 나의 존재 가치를 등산과 야영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힘 닿을 때까지 등산과 야영을 할 것이다.”
세계 여성 첫 에베레스트 등정자인 일본의 다베이 준코도 등반에 대해서가 아니라 걷기와 등산에 대해서 말한다.
“산에 오르는 행위는 굉장히 계획적이다. 육체적으로 힘든 건 전체의 20%정도밖에 안 된다. 난 목숨 걸로 산에 간 적이 없다. 원래 취미로 산에 오르기 시작했기 때문에 지금도 취미로 다닌다.”
가장 많은 베스트셀러를 저술한 이해인 수녀도 신적인 존재에 빗대 말한다.
“어쩌면 길을 걷는 행위는 기도의 과정과 동일할지 모른다. 절대적인 존재에 의지하고, 간절히 소망하고…. 사람들은 이 갈망을 길을 걸으면서 위로받고 힐링하면서 해소한다.”
삼성서울병원 전 암센터장 심영목 교수는 특히 눈이 잔뜩 쌓인 겨울산을 걷기를 좋아한다.
“어릴 때부터 무모하지만 도전정신은 무척 강했던 것 같다. 클라이머는 퇴로가 없다. 오로지 오르는 길뿐이다. 암벽은 보통 오르는 길과 내리는 길이 따로 있다. 오르는 길로는 내려올 수 없다. 떨어지면 죽는 거고, 죽기 싫으면 올라가야 하는 외길이다. 수술도 마찬가지다. 외과의사가 일단 수술을 시작하면 수술 중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이겨내고 끝내야 한다. 어렵다고 그만둔다면 환자의 운명은 그 순간에 끝난다. 도전과 결단과 배짱이 있어야 한다. 나의 그런 가치는 산에서 배운 것이 아닌가 한다.”
연세대 의대 정신의학과 전 원장 이홍식 명예교수는 동적명상을 강조한다.
“인간이 자연의 일부가 된다는 것, 그 자체가 힐링이다. 걷기의 명상적 효과는 걸으면서 복잡한 머릿속을 비울 수 있는 것이다. 매 순간의 호흡, 들숨과 날숨, 발바닥과 땅의 친밀감에 집중해서 걷다보면 생각이 없어진다. 어느덧 걷는 것 자체에 집중하며 떠오르는 생각이나 감정을 아무런 판단 없이 그냥 알아차리는 것이다. 그래서 동적명상이다.
[출처] http://me2.do/5RkjWsu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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