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찍 시작하고 해지기 두 시간 전에 마쳐라.
첫 번째는 시간에 관한 이야기다. 산행을 아침 일찍 시작해야 한다는 건 맞다. 그러나 이는 여름철에 해당된다. 해가 늦게 뜨고, 바로 그 시각 전후로 해서 가장 추운 겨울철, 아침에 꽁꽁 얼어붙은 산길을 걷는 건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
일년 중 해가 가장 짧은 동지, 12월22일을 전후로 한 겨울에는 가급적 햇살이 퍼지기 시작하는 늦은 아침 무렵부터 산행을 시작하는 게 좋다. 특히 초보자의 경우 처음부터 추위 때문에 고생하면서 산에 오를 필요는 없다. 겨울 산행이 즐거운 추억으로 남으려면 여러 가지 조건을 고려해야 하는데 특히 산행 시간은 중요하다.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도 한낮에 양지 바른 산길은 제법 담소를 즐기면서 걸을 수 있을 정도로 따스하다. 특별한 훈련이 아닌 다음에야 하루 중 가장 추운 때를 골라 산에 오를 필요는 없다.
근교산행에서는 두세 시간쯤 걸리는 코스를 택해 10시나 11시쯤부터 산행을 시작, 오후 두 시경이면 하산을 서둔다. 그래서 '해지기 한 두 시간 전'에 산행을 마치는 건 정석이다. 왜 해지기 전에 산행을 마쳐야 하는 것일까? 어둠 속에서 랜턴없이 산길을 걷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손전등 하나쯤 배낭에 넣고 다니면 어두운 길도 두렵지 않겠지만 처음부터 그런 준비를 완벽하게 해오는 사람은 거의 없다. 손전등을 넣어 오기는 했는데 배터리가 오래된 거라서 불빛이 흐리고 곧 꺼진다든가, 아니면 아예 접촉이 불량하거나 전구에 문제가 있어서 아예 켜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매사에 세심한 배려와 준비를 제대로 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다.
[2] 하루의 산행은 8시간 정도로 하고, 체력의 3할은 항상 비축하라.
초보자로서는 하루 8시간 산행은 무리다. 특히 겨울철 해가 짧은 점을 고려한다면 8시간 산행을 억지로 채우려다가 어둠과 추위 때문에 험한 꼴을 당할 가능성이 높다. 초보자일 경우 해발 1,000m 이하의 산을 택하고, 쉬는 시간 포함하여 왕복 다섯 시간을 넘지 않는 코스가 겨울철 하루 산행에 딱 맞다. 산행 도중이라도 시간 상 정상까지 다녀오는데 무리라는 판단이 들면 과감하게 돌아설 줄도 알아야 한다.
'체력의 3할을 항상 비축'한다는 건 초보자들에게 권하기는 부적절한 하나의 원칙일 뿐이다. 자신의 체력의 한계가 어느 정도 되는지 제대로 가늠할 수 없는 초보자들로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원칙이다. 초보자를 위하여 쉽게 풀어서 이야기하자면 자신의 걷는 속도와 쉬는 리듬을 지키는 게 가장 중요하다. 그래야 지치지 않고 즐거운 산행을 할 수 있다.
처음 산행을 시작했는데 잘 걷는 경험자 따라서 무조건 발뒤꿈치만 쫓아 올라가다가는 무리가 따르기 마련이다. 설사 그렇게 산행을 마쳤다고 해도 다리 근육통 등 그 후유증은 오래 간다. 너무 지치도록 걷지 말고 마음의 여유를 갖고 산행하도록 노력하라. 주중에도 한 번 이상 운동을 해주어 다리 힘을 키우는 게 바람직하다.
[3] 일행 중 가장 약한 사람을 기준으로 산행하라.
이 원칙은 대부분의 산행 모임에서 잘 지켜지지 않는다. 걷다 보면 어느새 걸음 빠른 사람은 앞서 가 있고, 걸음도 느리고 체력이 비교적 약한 초보자는 뒤쳐져 있게 된다. 일행이 많으면 많을수록 선두와 후미의 거리는 점점 더 벌어져서 나중에는 한 시간 이상 차이 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사태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산행에 참가한 상대방, 특히 초보자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중요하다.
이 원칙이 지켜지려면 산행에 참가한 이들의 체력과 경험이 비슷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따른다. 서로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 산행 팀을 꾸리고, 이 가운데서 가장 걸음이 느린 사람이 앞장서는 게 이상적인 운행 원칙이다. 둘이 가도 대장을 정해서 대장의 지시에 따라 속도를 조절하고 원만한 산행이 되도록 노력하라.
[4] 무게는 적이다. 가급적 30kg 이상은 메지 말라.
산에서 '무게는 적' 이라는 말은 맞다. 그러나 '30kg'은 심했다. 히말라야 고소포터들도 짐을 20kg 이상은 메지 않는다. 특히 초보자들의 경우 당일 산행에서 배낭의 무게가 10kg이 넘어간다면 그건 뭔가 불필요한 짐을 가져왔다는 이야기 밖에는 안 된다. 배낭에 짐은 가급적 적게 넣도록 하되 보온병과 보온도시락, 간식, 방한용 파카, 장갑, 모자, 4발 아이젠 등을 넣었다고 해도 최대 15kg을 넘지 않도록 한다.
아예 짐 없이 산에 올라간다면 그처럼 편하고 쉬운 게 없을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산행시간과 걸어 갈 수 있는 길은 그만큼 제한을 받게 된다. 방한복만 하나 달랑 넣어가지고 간다고 해도 될 수 있으면 배낭을 메고 산행 길에 나서는 게 좋다. 미끄러운 길에서 엉덩방아를 찧을 경우 등에 멘 배낭의 쿠션 역할 때문에 충격을 줄이고 큰 부상도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5] 배낭은 잘 꾸리고 손에는 절대 물건을 들지 말라.
초보자로서는 배낭을 '잘 꾸린다'는 말이 바로 와 닿지 않는다. 배낭에 짐을 넣을 때는 몇 가지 원칙이 있다. 그 중 첫 번째는 '가벼운 것을 아래, 무거운 것을 위에 넣기'이다. 무거운 것을 배낭 바닥에 넣을 경우 무게 중심이 엉덩이 쪽으로 쏠려서 경사진 산길을 걸을 때 더욱 무겁게 느껴지고 어깨에 부담이 간다.
그러나 가벼운 것을 아래, 무거운 것을 위에 넣어두면 무게 중심이 등 윗부분에 오게 되어 걷기도 한결 편하고 어깨에 걸리는 배낭 무게도 상대적으로 줄어 든다. 배낭에 짐을 넣을 때 각이 진 물건의 모서리가 등쪽으로 닿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잘 꾸린 배낭은 울룩불룩 튀어나오지도 않고, 보기에도 좋다.
휴지나 스카프, 칼, 컵, 헤드랜턴 등의 물품은 배낭 속에 넣지 말고 지퍼로 여닫을 수 있는 헤드에 넣어두어야 바로 꺼내서 쓰기에 편하다. 손에 물건을 들고 가파른 산길을 오르내리는 것은 불편할 뿐만 아니라 몸의 균형을 잡는데도 도움이 안 된다. 계곡이나 벼랑에서 실수로 떨어뜨렸을 경우 되찾기도 어렵다. 따라서 산행에서는 모든 짐을 배낭 안에 넣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배낭에 들어가지 않아서 손에 든 물건이 있다면 그건 짐 꾸리기를 잘못 한 것이다. 배낭 모양만 보아도 그 사람의 산행경력을 알 수도 있는 것이다.
[6] 등산화는 발에 잘 맞고 좋은 것을 신으라.
등산의 기본은 보행이다. 곧 걷는 것이다. 사람의 몸을 담고 다니는 신발을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이다. 신발은 좋은 것으로 준비하라. 겨울에 신는 등산화는 두꺼운 양말을 착용하기 때문에 평상시 신는 신발보다 한 치수 큰 것이 좋다. 너무 꼭 끼는 등산화를 신고 장시간 걸을 경우 발톱이 빠지는 수도 있다.
좋은 등산화는 방한과 방수가 되면서 동시에 통풍도 잘 되는 것이다. 눈 속에 빠져도 젖지 않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발에 난 땀으로 인한 등산화 내부의 습기가 잘 배출되어야 쾌적한 상태에서 걸을 수 있으며 동상도 예방할 수 있다. 3계절용 등산화는 가볍고, 가격도 상대적으로 싼 편이나 겨울철에 신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좀 비싸더라도 방수, 발수, 투습 기능이 좋은 겨울용 등산화를 준비한다. 고가의 첨단 소재로 만들어진 등산화가 인기를 끌고 있기는 하지만 가죽등산화는 여전히 소수 골수 등산인 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가죽등산화를 선택했다면 신기 전에, 또는 신고 난 후 방수 왁스를 골고루 칠해 가죽에 충분히 스며들도록 한다. 근교 산에서 보면 가끔 가죽이 벗겨져서 허옇게 일어날 정도로 신고 다니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렇게 관리를 소홀히 하면 등산화 수명이 단축될 뿐 아니라 방수나 방한 기능도 현저히 떨어져 눈길에서 양말이 금방 젖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7] 배고프기 전에 먹고 배부르도록 먹지 말라.
초보자의 경우 근교 당일 산행에서 '한꺼번에 너무 많이' 먹는 일은 거의 없다. 잠깐 쉬는 시간에라도 과일이나 홍차, 커피, 초콜릿, 비스킷, 사탕을 먹음으로써 칼로리를 보충하는 게 중요하다. 그러나 이것도 부지런하지 않으면 못하는 일이다. 바람 불고 추우면 배낭을 내려 안에서 뭔가 꺼낸다는 것 자체가 귀찮아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오이나 당근, 사과, 귤 등은 집에서 미리 껍질을 벗기고 먹기에 알맞은 크기로 잘라서 지퍼 백에 넣어둔다. 초콜릿, 비스킷, 사탕 등도 포장지를 벗겨서 바로 먹을 수 있게끔 준비한다. 비스킷이나 초콜릿은 플라스틱 케이스에 넣으면 부서지지 않아서 좋다. 이렇게 준비해 놓으면 여러 명이 나누어 먹을 수도 있고, 과일 껍질이나 비닐 포장지 등 쓰레기 발생 요인을 원천 예방할 수 있어서 좋다.
[8] 지도를 보라. 지도를 보고 또 보라.
초보자로서는 지도를 본다는 자체가 어려운 일이다. 일단 주변의 지형지물에 익숙하지 못해 자기 자신이 지금 현재 어디쯤 와 있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초보자는 겨울 산행에 경험 많은 리더와 함께 할 것을 권한다.
초보자가 굳이 겨울에 혼자서 산행하기를 원한다면 가급적 등산로 상에 거리와 시간 표시가 상세히 되어 있는 국립공원 가운데서 당일 산행이 가능한 천 미터 이하의 산을 택하도록 한다. 우리나라 국립공원의 산은 대부분 상세한 등산지도가 나와있다. 이를 구해서 산행 중에 틈틈이 보도록 한다.
주변의 지형 지물과 등산로 안내판, 계곡과 능선길, 사찰 위치 등과 대조하다 보면 나름대로 지도 보는 안목을 길러 나갈 수 있다. 산행 중에는 물론 산행 전에도 지도를 보고 또 보아서 대상산의 개념도를 머리에 넣도록 하다 보면(이를 인도어 클라이밍이라 한다) 언젠가는 지도가 입체로 보일 것이다.
[9] 길을 잘못 들었다고 판단되면 빨리 돌아서라.
초보자에게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자신이 길을 잘못 들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길을 잘못 들었다고 어렴풋이라도 깨달을 무렵이면 이미 날이 어두워져 가고 있거나 돌아서기에는 너무 멀리 간 지점에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초보자는 등산로 안내표시가 일정한 간격으로 세워져 있는 국립공원 또는 도립공원의 산이 가장 안전하다.
국립공원에서는 험한 길은 아예 '비지정 등산로'로 표시, 출입을 통제하여 길을 잘못 들어 조난 당하는 사태를 예방하고 있다. 초보자로서 가장 중요한 일은 자신의 능력 범위 안에서 산행을 하는 것이다. 늘 하산 시간을 염두에 두고 너무 늦어질 것 같으면 정상에 오르지 못한다고 해도 과감하게 돌아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10] 장비는 항상 손질을 잘 해 두고 산행기록은 반드시 써라.
힘든 산행일수록 집에 돌아와서 뒷정리가 안 되는 경우가 많다. 다음 산행을 위해서라도 등산화를 그늘에서 잘 말려두도록 하고, 아이젠은 습기를 제거한 후 보관해야 녹슬지 않는다. 배낭 안에 쓰레기를 장기간 방치할 경우 귤 껍질 등에서 곰팡이가 피어 배낭이 보기 흉해질 수도 있다.
초보자가 사용하는 장비의 종류는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꼼꼼하게 손질하는 게 그러 어렵지는 않다. 그러나 장비가 많아질수록 소홀히 하기 쉬운데 처음 시작할 때의 정상과 관심이 늘 필요하다. 처음 가본 산일수록 산행 기록을 충분히 남겨 놓은 게 좋다. 그래야 빠른 시일 내로 초보를 면할 수 있다.
산행 기록의 기본은 산행 날짜와 날씨, 산행 시작과 하산 시각, 산행 들 머리와 날 머리, 산까지의 교통편과 요금, 소요시간, 함께 간 사람들의 명단 등이다. 산행 중의 특기 사항으로 어느 지점이 길을 잃기 쉬우며, 실제로 길을 잘못 들었더니 어디가 나오더라 하는 식의 상세한 메모도 중요하다.
등산로 안내표지판에 적힌 소요시간과 자신이 직접 걸어서 잰 시간이 다를 수도 있다. 그런 사소한 차이도 기록에 남겨두도록 한다. 마지막으로는 간단하게 그 산에 대한 개인적인 느낌을 적어 놓으면 나중에 좋은 추억거리가 될 수 있다.
수첩과 필기도구를 이용한 고전적인 산행기록이 있는가 하면 최근 들어서는 디지털카메라가 훌륭한 기록도구로서 활용되고 있다. 역사 유적에 대한 상세한 안내문에서부터 간단한 등산로 안내표지판, 계곡이나 능선의 특징적인 지형 등에 이르기까지 샅샅이 촬영해 두었다가 글과 함께 올리면 아무리 초보라도 훌륭한 홈페이지를 가꿔 나갈 수 있다. 기록이 없으면 역사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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